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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으로부터 역사감각의 탈환을 위하여상품화, 사물화, 스펙터클을 넘어서는 인지적 지도 그리기
정강산 리뷰어 | 승인 2017.05.30 23:37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후 91년 단독 저서로 출간된)“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NLR, 1984)에서 건축, 미술, 음악, 영화, 문학 등 전방위한 예술에서의 변동을 시간에 대한 공간의 지배, 초-공간hyperspace, 문화적 우세종, 향수nostalgia, 혼성모방pastiche, 분열증, 미학적 대중주의, 깊이 없음 등의 개념으로 분석하며 총체적인 시대비판의 모델을 고안했다. 제임슨에게 이 개념들은 최종적으로 역사 감각이 상실된 현재를 표지하는 것이며,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전후 호경기의 특정한 국면의 자본주의적 변환과 조응하는 ‘문화논리’로 설정한 그의 작업은 삶의 심상과 이미지들을 아우르는 표상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비판- 즉 이데올로기 비판의 연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988년 발표된 에세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의 한 구절은 그의 관심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소비자본주의의 논리를 복제 혹은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방식이 있다는 점을 지켜봐왔다. 허나 더 중요한 질문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그 논리에 저항하는 방식도 있는지의 여부다”. 그의 작업의 요체는 ‘인지적 지도그리기cognitive mapping’로 표현되며 이는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연속성과 세계에 대한 총체화 된 상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 감각의 상실”이 편재한 상황에서 세계를 한 눈에 조망함으로써 현재 인간이 처해있는 객관적인 조건을 파악하여 자기동일성을 회복하고 온전한 실천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하의 논문( 「미래도시(원제: Future City, NLR, 2003), 문학과 사회 27(2), 2014)에서 제임슨은 그의 수많은 관심영역 중 도시와 건축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마찬가지로 총체적으로 물화된 세계의 양태를 드러내는 데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신학성에서
자본주의의 심미성으로

흔히 자본주의는 물질성이 압도적으로 지배적으로 된 시기라 여겨진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최소한의 물질적 단위에 기반 하지 않는다면 작동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생산의 지속적인 확대, 임금 축소, 노동 강도의 강화, 새로운 기술의 도입- 그리고 최근엔 팀제와 성과급제 내지 연봉제를 통해 심리적 요인까지도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적 통치 기술 내지 체계는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생산의 맞은 편, 소비의 측면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반물질성이라 할법한 경향과 조우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우리는 재화의 구체적인 쓸모를 취하기 이전에 일단 이윤 동기로부터 추동되어 생산된 초월적인 형이상학적 계기를 통해 그들을 손에 넣지 않는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버스를 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전화를 하는 등 일상적 삶의 매순간은 화폐를 통해 매개되며,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재화들 중 화폐와의 교환을 염두에 두지 않은, 독립적인 것은 없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의 도약, 탈산업화, 금융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신사회운동의 대두, 세계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후기 자본주의 시간대에 들어 상품들의 연관관계로서의 사회적 관계들은 이미지를 통한 소비와 이에 따른 생산을 종용하는데, 이는 곧 상징자본(부르디외), 시뮬라크르(보드리야르), 스펙터클(기드보르) 등의 개념으로 적절히 설명되어 왔다. 이때 이들이 지칭하는 것은 전적으로 상징적 약호들, 기호들의 상대적 차이에 기초한 비물질적인 차이의 체계들 자체이며, 이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물질성과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비합리적인(그러나 경제 전체의 합리성을 위한) 소비주의의 한 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임슨은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가 이미지를 구매한다는 개념 자체는 이미 상품 개념에 대해 유용한 낯설게 하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지를 쇼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훨씬 더 유용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우리는 쇼핑의 과정을 새로운 형식의 욕망의 과정으로 대체할 수 있음과 동시에, 실질적 거래가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의 상황, 즉 쇼핑 행위를 통해 물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 쇼핑의 과정을 위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소비의 물질적 측면은 모두 증발해버린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두려워했던 대로, 소비는 철저하게 심리적인 것이 되고 만다."(477쪽)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독해하면 곤란하다. 제임슨의 논제는 위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변화들이 현상학적 측면에서 일말의 진리계기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 변화의 양상들을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하의 논문에서 제임슨은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대학원 세미나 결과물 <도시프로젝트 Project on the City>_“쇼핑 안내서Guide to Shopping”를 검토하며 우리 시대의 공간적 양태의 정수에 대한 환유로서 쇼핑센터, 백화점을 탐구하고 있다. 우선 제임슨은 쿨하스의 작업들을 두고 ‘건축을 위한 강좌라기보다 오늘날의 도시에 관한 연구에 가깝다’는 평을 내놓으며, 도시 공간의 시대적 단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단언컨대 전통적인 혹은 우리가 모더니즘적이라 부를 수도 있는 도시 계획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미국의 교통 패턴과 도시의 구획화 문제에 대한 논쟁, 심지어는 홈리스나 빈민가 개발 사업과 부동산 세금 정책 등에 대한 논쟁마저도 무의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제 3세계에서 우리가 도시라 칭해왔던 것의 범주가 엄청나게 확장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449쪽)

요컨대 “2차대전 직전까지의 고전적 도시구조”와 오늘날의 도시구조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차이는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최근의 에세이 “단독성의 미학”에서 그가 내놓은 답에 따르면, 아마도 이는 (이전까지 그가 미처 강조하지 못했던)‘세계화’와 이에 연동하여 재편된 자본주의적 질서의 전환에서 상당부분 연원할 것이다. 이어 제임슨은 <도시 프로젝트>의 1권 󰡔위대한 도약󰡕에서 검토된 중국의 고층 건물 붐을 언급한다. 제임슨에 따르면 쿨하스는 흥미롭게도 그러한 현상을 “전환기적 관점”이나 “자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통해 공산주의로 이행하고자 했던 등소평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시장의 수요와는 관계없이 건설되고 있는 고층 건물들과, 계획적으로 기획된 심천深圳, 동관東筦, 주해 珠海, 광저우 등 중국 거대도시들의 면모를 통해 우리는 건축이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담지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관철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이는 아도르노의 예술론을 계승하여, 예술에서 유토피아적 충동들을 발견할 수 있음을 논증하는 󰡔정치적 무의식󰡕(2015)의 논지를 상기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쇼핑몰화 된
도시공간의 재편

이어 제임슨은 <도시프로젝트> 2권에 해당하는 󰡔쇼핑안내서󰡕를 살피며 그것이 건축과 도시 연구 영역을 비롯하여 정신분석학에서부터 위기이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제적 영역에 걸쳐있음을 지적한다. 그에게 이러한 간학문적 뒤섞임은 포스트모던의 필연적인 형식인데, 이유인즉 “포스트모던 시대의 존재의 법칙은 비차별화이며, 또한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사물들이 서로 겹쳐지며 또 어떻게 분과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고 상호침투 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천개의 고원󰡕, 󰡔권력브로커󰡕, 󰡔제국󰡕, 󰡔렘브란트의 눈󰡕, 󰡔아케이드 프로젝트󰡕, 󰡔역사와 고집󰡕,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 󰡔공간, 시간 그리고 건축󰡕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제임슨은 “쇼핑몰만큼이나 새롭고 미국적이며 후기자본주의적인 것은 극히 드물 것”이라며, 쇼핑몰의 전 세계적 확산은 곧 세계의 미국화, 포스트모던화, 세계화를 암시한다고 주장하고, 쿨하스가 쇼핑몰에 대해 적시한 사실들을 일별한다. 이 부분에서 그는 쇼핑몰 대체재의 부상을 언급하며, 쇼핑이 온라인을 경유하여 새로이 재편되고 있음을 진단하는데,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이고 공학적인 조건들”을 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초부터 발전하여 1850년대 이후 위기에 처한 아케이드를 백화점 산업이 대체해간 배경에 오스만George Eugene Haussman의 파리혁신 사업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최근의 연구들처럼, 구매를 매개하는 여러 조건들의 변화를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공항에는 새로운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고 또 그 자체로 쇼핑몰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박물관도 마찬가지”인데 도시 역시 시내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교외에서 번성 중인 대형마트, 쇼핑몰 등으로 그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선 쿨하스의 연구가 제시하는 한 사례는 징후적이다: 쇼핑몰 내부에서 정치적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에 관한 1994년의 판결에서 뉴저지 대법원은 “쇼핑몰은 ‘전통적으로 언론의 자유의 고향’이었던 공원과 광장의 역할을 대체했다”고 선언함으로써 “쇼핑몰이 오늘날의 도시 중심가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 시위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후 제임슨은 “하나의 도시국가로서 쇼핑 지역을 구성함과 동시에 지역을 넘어 쇼핑 세계 그 자체도 구성하”는 싱가포르와, “세계 3대 도시로 성장한 도쿄의 도시 논리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백화점 ‘데파토Depato’, “새로운 종류의 도시 계획, 쇼핑, 세계화 오락산업, 심지어 새로운 종류의 유토피아”를 창조한 미국의 디즈니를 언급한 뒤 쇼핑몰의 공간에 관한 문제를 고찰한다. 여기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공간의 심리학”에 대한 것으로, 건물의 구획과 공간 자체의 배열, 내부 사물들의 배치를 아우르는 요인들이 일관되게 표상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과, 이를 조직하는 방식에서 미적인 정치의 양태가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균질하고 촘촘한
썩은 공간, 정크스페이스

이어 제임슨은 󰡔쇼핑 안내서󰡕에 수록된 쿨하스의 에세이 “정크 스페이스Junk space”(이 글은 2002년 옥토버October 100호에 게재되었다)를 조명한다. 그에 따르면 “이 글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찌꺼기(변증법적 합성 이후에 남는 것들 혹은 정신분석학적 치료 이후에 남는 찌꺼기)로서의 쓰레기junk에 대한 개념에서 시작한다.”

“정크 스페이스는 우리의 현재의 성취들 전체의 합이다. 즉 우리는 이전의 모든 세대들이 함께 만든 것 이상을 건설해왔지만, 그와 동일한 척도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남기진 않았던 것이다. 추악함의 새로운 복음에 따르면, 20세기로부터 살아남아온 것 보다 21세기의 건축에 이미 더 많은 정크스페이스가 있다.(..)20세기에 현대 건축물을 발명하는 것은 실수였다.”(175)

“정크스페이스는 봉인되어져 있고, 마치 거품처럼, 구조가 아니라 표피에 의해 결합되어있다.(..)그것은 돈이 들고, 더 이상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제약된 공간은 불가피하게 조건부의 공간이 된다. 즉 이르든 늦든 모든 조건부의 공간은 정크스페이스가 된다.(..)정크 스페이스는 개념들의 버뮤다 삼각지대이고 버려진 투명한 실험용 접시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독특함을 지우고, 결심을 약화시키며 의도를 실현과 혼동한다. 그것은 서열화hierarchy를 축적accumulation으로 대체하고 합성composition을 부가물addition로 대체한다.”(176)

“정크스페이스는 자연스러운 기업의 충만함-즉 기업의 자유로운 행위-을 통해 자연적으로 발생하거나, 삼차원의 박애, 그리고 해안가와 과거의 극장, 군사기지, 버려진 비행장의 광활한 지역들을 개발업자들이나 미래의 균형에서 어떤 적자도 수용할 수 있는 부동산거물들에게 낙천적으로 팔아버리는 (종종 이전에 좌파였던)관료들에 대한 오랜 기록들과 함께 임시의 “차르”의 결합된 행위들을 통해, 혹은 부도 보호Default Preservation(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시대정신이 신성불가침을 선언해온 역사적 복합체의 존속)를 통해 발생한다.“(184)
October, Vol. 100, Obsolescence. (Spring, 2002)

제임슨은 여기서 “새로운 공간의 언어”, 그러나 철저히 황폐화된 공간의 언어를 발견한다. 즉, “공간 그 자체가 역사의 새로운-혹은 마지막?-순간에 지배적인 약호로 그리고 헤게모니적인 언어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언어의 토대인 정크스페이스는 공간 자체를 병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멸종하게 만들어버린다”. 다시 말해 그에게 정크스페이스는 바이러스와도 같은 공간, 모든 것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이 소멸함으로써 남겨진 찌꺼기와도 같은 공간, 상품으로 균질해지고 납작해진 공간,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에 특징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상품화-사물화-스펙터클을 넘어
역사성의 회복을 위하여

이제 제임슨은 노골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떻게 하면 역사를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까?(..)그리고 유토피아의 신호를 다시 한 번 전송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바람도 없는 포스트모던적 현재를 탈출하여 실재 역사적 시간 속으로, 그리고 인간에 의해 창조된 역사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어 그는 흥미롭게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로 글쓰기를 내세운다. “우리의 무기는 글쓰기다. 글쓰기의 몽환적인 반복은 우리의 모든 존재 형식(공간, 주차, 쇼핑, 일, 식사, 건물)을 관통하고 있는 동일성에 집중하며, 색상이나 질감을 뛰어넘어 모두가 표준화된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도록 만든다.(..)문장은 이런 반복적 강요로 가득 차 있으며, 공간의 공허함을 향해 주먹질을 날린다. 문장의 에너지는 들뜬 마음과 신선한 공기를, 안도의 희열을, 역사와 시간 속으로 그리고 하나의 구체적인 미래 속으로 다시 한 번 돌진해 들어가는 오르가즘을 예언한다.” 이는 󰡔미니마모랄리아󰡕에서 “병 속의 편지”라는 알레고리로 지식인의 역할을 암시했던 아도르노, 혹은 바우만이 󰡔유동하는 공포󰡕에서 이를 전유하여 내놓는 답변과 유사해보이지만, 제임슨에게 ‘글쓰기’라는 알레고리는 그보다 덜 비관적인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여기서 쓴다는 행위는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간성을 감지시키고, 자기동일성을 확인시키며, 주체가 경험적 측면에서 스스로 사유로 이끌게 함과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파편화된 인지적 계기들을 동일한 형식으로 소급시킴으로써 구성해내는 실천 일반을 암시하는 암호와도 같은 말이다. 허나 어려움은 그런 와중에도 쇼핑몰화 된 세계의 체계가 촘촘히 스스로를 관철시키는 데에서 발생한다. 결국, “이 세계는 사실 그 자체로 쇼핑몰이다. (..)정크스페이스라는 바이러스는 사실 쇼핑 바이러스인 것이다. 디즈니가 세계를 디즈니랜드로 만들어버리듯, 이 바이러스는 유독성의 이끼처럼 점차 세계를 잠식하게 될 것이다”. 제임슨에게 이는 곧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에 관한 논의에서의 “상품화”, 혹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전개된 루카치의 “사물화reification”, 나아가 이미지화된 상품의 기표가 상품이 생산되고 유통되며 세계가 조직되는 방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양상을 설명하고자 했던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이론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변화들이다. “욕망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소비주의consumerism와, 물질적 측면들(사용가치의 모멘트들)이 본격적으로 소거되어 “심리적인 것이 되고 만” 소비의 양태는 실물과 분리되어 과열되고 있는 금융시장의 양태와 정확히 조응한다(이는 한편으로 기표의 무한한 미끄러짐을 주장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에 그가 가하는 비판과 연결된다). 이것은 소비주의에 대한 윤리적 단죄라기보다, 적어도 상품의 차이들에 의해 부여된 상징들과 정체성들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승인하는 한, 그리하여 이를 인식론적으로 넘어서지 못하는 한 어떤 변화도 불가능할 것을 제임슨의 비관이라 할 수 있다. 글의 말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등소평의 체계 내에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쇼핑몰을 건설하는 것에 더 가깝다. 여기에 숨겨진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쇼핑은 하나의 공연이다. 돈과는 상관없는 공연이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공간이며, 그 공간이 바로 정크스페이스인 것이다.”(477-478)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기조 논지를 보충하며, 제임슨 자신이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던 드보르의 ‘스펙터클’ 개념이 오늘날 도시 공간의 건설과 양태의 기저에 놓인 하나의 축이 되었음을 지적하는, 글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결국 일말의 유토피아적 기획을 담지한, 전통적인 시장의 논리를 벗어난 듯한 중국의 마천루들이 건축될 수 있는 조건은 그것이 이미지에 기반한 환상에 공모하는 한에서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때 정크 스페이스는 거대도시들과 그 특징이 되는 쇼핑몰들을 지시하며, 균질화된 비공간으로서의 쓰레기 공간(정크스페이스)은 외려 (현물성/물질성에 기댄)‘돈’과는 상관없는 공연이 상연되는, 구경거리를 생산하는, 미학적 경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의 폐허, 의미의 폐허 위에 세워진 정크스페이스를 탈출하기 위해 어떤 기획을 시도할 수 있을까? 어떤 시도를 하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계의 전 영역에서 관철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티의 공고한 지속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는 점일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서동진, 󰡔심미적인, 너무나 심미적인 자본주의: 문화연구의 위기와 그 비판적 전환을 위하여󰡕, 󰡔경제와사회󰡕 제92호, 2011.

조원옥, 󰡔포스트모던 문화연구에서 역사성 모색하기: 프레드릭 제임슨의 변증법적 텍스트 이해󰡕, 󰡔역사와 세계󰡕 제 39호, 2011.

정강산 리뷰어  wjdrkdtks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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