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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석: 해명된 질문과 해명되지 않은 질문마르크스주의 전형논쟁의 풀리지 않은 쟁점
박알림 리뷰어 | 승인 2016.12.31 20:49

마르크스주의 전형논쟁과
새해석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는 여전히 이른바 전형문제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기원한다는 노동가치이론에서 가치가 어떻게 가격으로 전형(transformation)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마르크스는 가치가 어떻게 가격으로 전형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장에서 교환되는 노동시간은 사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시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총계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가치가 투여된 노동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때에, 개별 상품의 가치가 가격과는 괴리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생산물의 총가치와 총가격, 그리고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이 같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른바 ‘총계일치’ 명제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뵘-바베크 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자본론> 1권에서 사용한 ‘가치’라는 용어와 개별 상품들의 투하노동을 동일시함으로써 마르크스의 해법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명백히 마르크스의 용어법에 대한 오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형논쟁은 촉발되었으며,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복잡하게 논쟁을 이어가도록 이끌었다.

70년대 말 뒤메닐과 폴리는 각자 독립적으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이론에 있어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이는 이후 뒤메닐의 제안에 따라 완전한 해법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새해석으로 이름을 달리해서 불리고 있는데, 이름만으로는 어떠한 해석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 새해석에서의 중심적인 개념은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화폐는 사회적 노동시간을 표상한다고 말한 것에서부터 이 개념은 유래한다. 따라서 총생산의 체계에서 정의된 노동의 화폐적 표현을 척도로 사용하면, 현실경제에서 화폐의 플로우를 노동시간의 플로우로 변환할 수 있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 따라 총계일치 명제에서 총생산을 순생산으로 바꾸고, 노동시간의 화폐적 표현을 사용하면, 총계일치 명제는 성립한다. 즉 순생산의 총가격과 총가치, 총잉여가치와 총이윤은 같다.


새해석에 관한
해명된 쟁점


류동민(Rieu, D.-M. (2009). the “New Interpretation”: Questions Answered and Unanswered. Metroeconomica, 60(3), 568–570.)은 새해석을 둘러싼 여러가지 논쟁 중에서 해명된 것과 해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논한다. 먼저 해명된 것은 이질적 노동에 대한 것이다. 일각에서 새해석이 이질적 노동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 뒤메닐과 폴리, 그리고 레비는 새해석을 유도하면서, 이질적 노동을 고려한 것은 명료하다는 것이다. 첫째로 이들은 산업의 수와 노동유형의 수를 동일하게 두지 않았다. 즉, 산업의 수(n)과 노동유형의 수(m)은 같지 않다(n≠m). 둘째로 착취에 관한 쟁점을 노동자의 소비재 번들의 선택과 논리적으로 구분하였다. 이들이 명명하는 ‘지불되지 않은 구매력(Unallocated Purchasing Power)’는 노동력의 가치와 임금재의 가치 사이의 혼동을 명료하게 해명한다.


새해석에 관한
해명되지 않은 쟁점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명되지 않은 쟁점이 남아있다. 이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먼저 단순화를 위해서 축약식 모형을 고려하자. 개별 상품들의 가치는 수식(1)처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E와 W는 n*n 형태의 대각행렬으로 각각의 원소는 개별 산업 내에서의 착취율(ei)과 각각의 평균인금율(wi)이다. 여기서는 단일한 착취율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가격은 수식(2)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R도 n*n 형태의 대각행렬으로 각각의 원소는 개별 산업 내에서의 이윤율(ri)이다. 그러므로 뒤메닐, 폴리, 레비와는 달리, 단일한 이윤율 가정 없이 시장가격을 정의한다. 이제 (1)식과 (2)식에 따라 수식(3)과 같은 관계식을 정의할 수 있다.

새해석의 기여 중 하나는 가치와 가격을 직접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즉 총경제의 착취율(e)는 총이윤율(π)과 동일하다. 단일한 착취율을 가정하는 것은 시장에서 데이터를 통해 관찰된 가격(p)과 부문별 총이윤(R)과 기술수준(a)에서부터 개별상품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ei=ej=e 가정을 통해서 깔끔하게 유도된다. 즉 식(4)가 유도된다.

하지만 일반화의 경우, 다시 수식(3)을 고려하면, n개의 수식과 2n개의 미지수(λ1, λ2, λn ···, e1, e2, ···, en)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부문별 수준을 고려할 경우, 과소결정되기 때문에 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뒤메닐, 레비, 폴리는 노동시간의 화폐적 표현(μj)가 주어져 있다고 단순하게 답할 뿐이다. 해명되지 않은 것이다.


전형논쟁과
그 해명들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전형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본 글은 류동민의 논문(Rieu, D.-M. (2009). the “New Interpretation”: Questions Answered and Unanswered. Metroeconomica, 60(3), 568–570.)의 내용을 다루는데, 여기서 류동민은 새해석에 대한 쟁점을 한편으로는 해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전형논쟁에 대한 여러가지 논쟁들은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해석과 일치하는지에 대한 쟁점과 함께 경험적 분석에 있어서 여러가지 곤란들이 다뤄지고 있다. 특히 새해석이 가지는 장점이 경험분석에 용이성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들은 치명적일 수 있다. 더구나 이윤율이 부문간 수렴되지 않는 상황들을 고려할 때, 단순히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분명 문제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Rieu, D.-M. (2006). A Reexamination of the Quantitative Issues in the New Interpretation.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38(2), 258–271.

Kim, C. (2010). The Recent Controversy on Marx’s Value Theory: A Critical Assessment. Marxism 21, 7(2), 282–320.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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