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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누구인가 (제1탄)이정철 연구원, 정여립 모반사건과 그 옥사 철저히 재론 요구
강성민 리뷰위원 | 승인 2016.02.16 17:07
정여립 상상도.

얼마 전 개봉한 「검사외전」은 철저히 흥행공식에 따른 영화다. 개봉 3주차에 820만 명을 넘겨 그 공식이 훌륭했음을 입증했다. 이 영화중에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는데 억울하게 옥살이한 검사 황정민이 어렵게 만든 재심 재판에서 변론하던 중 “범인은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것이 이른바 공식이다. 어떤 명백히 인위적이고 많은 노력이나 책임이 따르는 사건을 주도하는 자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이익을 생각하고 있는 자다.

그렇다면 시계추를 조선시대로 한 번 돌려보자. 조선 왕조 500년간 많은 정쟁과 사건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진범이 가려지지 않은 사건을 역사법정에 불러본다면 ‘기축옥사己丑獄事’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한다. 조선 선조 때인 1589년에 정여립을 비롯한 동인의 인물들이 모반의 혐의로 박해를 받은 큰 옥사임에도 모반이 실제 있었는지의 여부부터 여러 가지가 의문투성이다. 임진왜란으로 여러 기록이 소실되어 더욱 그렇다. 최근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논문이 나왔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의 「기축옥사 초기 전개 양상 再考」(『민족문화』 45, 2015년 6월)인데,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논문은 사건의 ‘초기 단계’를 철저히 되짚어보는 게 목적이다. 과연 논문은 ‘기축옥사’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냈을까?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1546∼1589)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고변서가 조정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흥미롭게도 주모자로 지목된 정여립이 사망하고 나서야 사건이 본격화되었다. 사건이 본격화 된 순간에 ‘역모’ 자체는 이미 실패한 상태였다. ‘정여립 역모 사건’보다 그 후속 과정인 ‘옥사’를 중심으로 사건 이름이 붙여진 것은 그 점에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기축옥사는 선조 8년 발생한 ‘동서분당’ 전개의 분수령이면서 그 일부다. ‘동서분당’이래 진행되었던 정치적 현상이 기축옥사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또 변주되었는가를 살펴봐야 사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 명의 인물을 불러온다. 바로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선조다. 이 사건에서 선조(1552~1608, 재위 1567~1608)의 역할과 책임 문제는 사료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다. 당쟁은 경쟁하는 당파가 선조에게 더 많은 정치적 신임을 얻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인 선조는 마치 국외局外의 심판자처럼 여겨졌다.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켰다” -- 조정의 초기 대응

고변서가 도착하자 선조는 곧바로 3정승 6승지를 비롯한 요직을 불러모았다. 밤 늦은 시간이었다. 여기서 몇 가지 조치가 취해졌다.

“의금부 도사를 보내서 정여립은 물론 고변한 사람들까지 붙잡아 오도록 했다. 무고誣告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여립 무리가 실제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비하여 토포사도 동시에 파견하였다. 이때 정여립을 체포하기 위해서 파견될 의금부 도사로 선정된 사람은 柳湛(1536~?)이었다. 사간원 주장에 따라 토포사에는 전라도에 이대해李大海, 경상도에 정윤우丁允祐, 충청도에 정숙남鄭淑男이 선정되었다. 이들 모두 이날 밤늦게 출발했다.”(213쪽)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정여립 체포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0월 6일 밤 전주에 도착한 체포조가 습격한 그의 집은 비어 있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파발을 타고 10월 9일이나 10일경 선조에게 전달되었다. 여러 사료가 전하듯이 정여립이 도피했다는 소식은, 당시에 정여립이 정말로 모반을 꾀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도피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 도성 안이 거세게 술렁였다. 여립의 도피 소식이 전해졌던 것으로 보이는 선조 22년 10월 9일 혹은 10일에 기축옥사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정여립이 근방에서 추격대와 대치하다가 자살을 해버림으로써 이 모반사건은 주모자

<대동야승>에 실린, 기축옥사의 전말을 기록한 <기축록>

가 없는 상태에서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가야 했다는 점에서 발생했다. 기축옥사는 정여립 집에서 수거한 ‘적가문서賊家文書’, 즉 정여립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에 기초해서 진행되었다. 편지는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주변 가담인물을 밝혀낼 유일한 증거로 여겨졌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반박한다. “엄밀하게 보면 그 편지들은 정여립의 친소관계만을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조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역적과 결교한 사람들은 그 서찰이 남아 있어 정상이 뚜렷하니, 아무리 중죄를 입더라도 그들에게 무슨 유감이 있으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적가문서’에서 정여립이 역모를 꾸민 구체적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조는 사건 처리를 과도하게 몰아갔다. 사건 관련 혐의자 범위가 매우 확대되었고, 적가문서에 나온 인물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선조의 주관적 판단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사실 기축옥사를 정여립 반대파가 꾸민 음모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적가문서에서 비롯되었다. 문서가 노출될 경우 큰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여립이 도피 전에 이를 처리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적어도 적가문서를 근거로 이 사건을 정철과 송익필 등 서인의 음모로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10월 6일 밤 정여립이 금구 동곡 집에서 몸을 피하는 과정은 매우 급박했다. 이미 금오랑과 선전관이 전주에서 군사들과 함께 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 있던 정여립 집 비부가 한 발 앞서 급박하게 소식을 전해온 상황이었다. 상황의 다급함은 인근에 있던 지함두에게도 연락을 못하고 정여립 일행이 몸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정여립이 피신 과정에서 문서를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상황의 급박함에만 기인한 것 같지는 않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는 그 문서들이 노출되었을 때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듯하다. 정여립은 최고위 동인 측 문관들과 가까웠지만, 역모와의 직접적 관련성이 확인된 인물들은 거의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물론 역모사건의 성격 상 역모에 실제로 관련되었더라도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건 및 관련 인물들 전체를 보아도 그가 평소 가까웠던 동인 엘리트 관료들과의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에 정여립은 자신의 계획과 관련해서 그들을 제한적으로만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정여립의 편지에 주목했던 사람은 오히려 선조였다. 민인백에 따르면 선조는 금오랑 유담과 선전관 이응표를 파견할 때 이미 적가문서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기축옥사는 거의 전적으로 선조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그가 ‘적가문서’를 장악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편지들 을 신하들에게 내려주곤 했다. 아래 『연려실기술』에 남은 기록을 보자.

“백유양이 여립에게 보낸 편지에, 임금에게 대하여 부도不道한 말이 많이 쓰여 있었다. 임금이 그 중 가장 심한 것만 골라내어서 국청鞫廳에 내려 보냈다. 그 편지에, ‘이 사람(임금)이 시기심이 많고 모질며 고집이 세다’ 하였고, 또 ‘이 사람은 조금도 임금의 도량이 없다’ 하였으므로 임금은 백유양을 역적으로 처단하라고 명했으나 정철이 아뢰기를, ‘경악經幄에서 여립 같은 역적 하나가 난 것만도 큰 변고인데, 백유양이 비록 못 되었으나 어찌 다시 여립 같은 역적이야 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대신이 권력을 제 마음대로 한다고 말하였다.”(217쪽)

 

다음주 제2편으로 이어짐

강성민 리뷰위원  paperf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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