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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익은 아니다케인즈 경제학의 철학적 기초
박알림 리뷰어 | 승인 2016.09.26 17:48

흔히 사람들은 과학과 철학은 전혀 관련이 없거나 매우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학자들을 떠올릴 때,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거나 두꺼운 수학책을 펴놓고 공책에 수식들을 끄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한편 철학자들은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철학자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로 된 오래된 책을 읽고, 무엇인가 메모하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켜놓고 무엇인가를 쓴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대부분의 과학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연구를 하는 과정도 매우 상이하다.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다. 대학에서 해당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철학자들도 때로는 과학적 주제들에 대해서 탐구하고, 과학자들도 철학적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개진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어떠할까. 경제학은 일찍이 ‘사회과학의 여왕’[이 표현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기념 강연에서 한 말이다-필자 주]을 자임하였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은 시종일관 경제학은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거나, ‘이데올로기’와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들에 따르면 경제학에서 철학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통념과는 달리 경제학에도 철학이 존재한다. 다른 과학자들과 똑같이 말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철학적
기초

케인즈는 잘 알려져 있듯이 경제학에 있어서 경제정책이 가지는 유효성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케인즈는 유효수요라는 개념을 통해서 경제정책을 통한 총수요 진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유효수요라고 함은 실제로 구매력이 주어져 있을 때의 수요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경제는 만성적인 유효수요부족에 빠져있고, 따라서 경제정책을 통해서 이 유효수요를 진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즈의 경제학이 가지는 함의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루치(Gruchy, A. G. (1948). The Philosophical Basis of the New Keynesian Economics Ethics: An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Political, And Legal Philosophy, 58(4), (pp.235~244)[논문 제목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의 논문은 1948년 당대의 케인즈 경제학에 대해서 ‘New Keynesian Economics’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오늘날 일반적인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학설사적으로 볼 때에, 케인즈 경제학은 Neo-Keynesian과 New Keynesian으로 구분되고, 저자가 글을 쓰던 당대에는 New Keynesian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표현하는 New Keynesian은 Keynes와 당대의 Neo-Keynesian 경제학이라고 보아야 타당하다. New Keynesian은 New Classical이 등장한 1970년대 이후 이들의 논의를 받아들여 출현하게 된다. 한편 Neo-Keynesian은 ‘신고전파 종합’이라고도 불린다. 케인즈의 이론과 신고전파의 이론을 종합했다는 의미에서이다-필자주]는 케인즈가 영향을 받았을 당대의 철학에 대해서 논한 후, 케인즈 경제학이 가지는 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케인즈 이후, 경제학의 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일반적으로 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거시경제학의 기원을 경제학계에서는 흔히 케인즈의 『고용과 이자, 그리고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이하『일반이론』)이 출판된 1936년으로 잡는다. 바로 거시경제학의 원년이다. 그루치의 논문이 1948년에 출판된 것임을 감안할 때, 일찍이 케인즈 경제학이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 각별하게 여겼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철학적 배경과
케인즈의
철학

케인즈 경제학의 철학적 기초를 논하기 이전에, 당대의 철학적 배경이 어떤지 살펴보면 케인즈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당대의 철학적 특징은 ‘전체주의’이었다. 당대의 철학은 18세기나 19세기 철학자들이 원자적 사고를 했다면, 20세기의 철학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유기적(organismal)’, ‘종합적(synthetic)’, ‘총체적(holistic)’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당대의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두번째 당대의 철학이 가지는 특징은 사물의 창발적 본성(emergent nature of thing)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즉 사물의 총체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사물은 말하자면 역동적인 존재이다. 마지막 특징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화이트헤드는 실제로 ‘철학은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케인즈의 철학(1)
:
총계적
접근

이러한 당대의 철학적 배경은 케인즈 경제학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난다. 먼저 케인즈는 ‘전체론적(totalistic)’이며 ‘총계적(aggregative)’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점은 케인즈가 거시경제학을 발명해낸 첫번째 이유에 해당한다. 케인즈가 이룩한 거시경제학은 개별행위자(individual agent)의 행동이 아니라, 이른바 ‘총계변수(aggregative variable)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분석에서의 수준이 미시적 수준에서 거시적 수준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수준을 달리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보기에 총체로서의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의 단순 합(sum)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케인즈의 철학(2)
:
현실적
접근

케인즈는 기업이나 소비자의 개별 행태를 분석하기 보다, 총체로서 경제시스템과 가용한 자원을 모두 활용하여 극대화된 경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러한 그의 작업은 과거의 경제학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었다. 실제로 그는 과거의 경제학자들을 이르러 교조적인 경제학(orthodoxy economics)라고 부르며 자신의 이론을 개진한다. 그가 저술한 책, 『일반이론』이 왜 ‘일반이론’인지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제학은 ‘특수한 상황에만 성립하는’ ‘특수한 이론’이지만, 자신의 이론은 일반화된 형태의 이론, 즉 ‘일반이론’이라는 것이다. 아주 신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기존의 이론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바로 기존의 이론은 현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을 『고용과 이자, 그리고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으로 하였다는 점을 주지하자. 그는 당대의 경제학자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던, 고용을 경제분석의 종속변수로 두었던 것이다. 바로 경제분석의 목표로 ‘완전고용’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오늘날 거시경제학에서는 종속변수를 국민총생산(GDP)로 삼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산출량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은 첫번째 목표로 산출갭 최소화로 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부터 유래한다 – 이는 ‘완전고용’에서 법개정으로 바뀐 것이다.


케인즈의 철학(3)
:
동태적
접근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그가 경제를 대단히 동태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그는 개인의 심리나 기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과정들에 대해서 다룬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행태는 단순히 산술적 계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러한 과정으로 파악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의 동태적 사고는 케인즈의 생전에 온전히 구현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토대로 당대에 구성된 모형들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특히 그가 동태적으로 서술한 내용들이 정태적이고 단촐한 수식들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학부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IS-LM 모형과 AD-AS 모형이 바로 이것들이다.

이들 모형들은 동태적인 경제모형을 구성하였던 새고전파(New Classical)의 출현으로 대대적인 비판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루카스 비판’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후 새케인즈주의(New Keynesian)은 합리적 기대이론에 기초한 새고전파의 동태이론을 받아들여 케인즈경제학을 비로서 동태적인 모형으로 구현하게 된다. 이들의 이론이 원형에 해당하는 케인즈의 이론을 적절히 표현한 것이냐는 쟁점이 남겨져 있지만, 케인즈의 철학적 배경이 오늘날 경제학에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여전히 사상은
중요한가

그루치의 논문은 케인즈가 영향을 받았을 당대의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고, 케인즈의 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을 논문의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특히 그는 케인즈의 경제학이 얼마나 혁명적인 것이었는지를 예찬하면서,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난 케인즈의 못다한 작업을 학문 후속세대에서 실천되기를 주문하며 끝을 맺는다.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1936년에 출판되었고, 오늘날 거시경제학의 원년으로 지목된다. 그리고 케인즈가 사망한 해는 그로부터 10년 후 1946년이었고, 그루치의 논문이 작성된 것은 1948년이었다. 케인즈의 경제학이 당대의 경제학을 비판하고 거시경제학이 출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경제학도들의 상식이 되었다. 그가 만든 경제학이론은 사실상 새로운 경제학을 출현하게 하였으며, 동시에 여전히 경제학의 역사에 있어서 두고두고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경제학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분명 그가 가진 사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좋아한다. 이 구절은 책의 마지막 구절로 매우 유명한 것이다. 다소 길지만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는다. 나는 철학과 사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은,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고 믿는 실무가들도, 이미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허공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권좌에 앉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의 어떤 학구적인 잡문으로부터 빼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득권익의 위력은, 사상의 점진적인 침투에 비하면,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사상의 침투는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경제 및 정치철학 분야에 있어서는 25세 내지 30세를 지나서는 새로운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바든 사람은 많지 않으며, 따라서 공무원이나 정치가, 그리고 심지어 선동가들까지도 일상사태에 적용하는 관념에는 최신의 것은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르든 늦든, 선에 대해서든, 악에 대해서든, 위험한 것은 사상이지 기득권익은 아니다.” [John M.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조순 역. 비봉출판사. 2007, pp. 461-462]

 

*함께 읽으면 좋을 논문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역사적 전개과정: 평가와 전망」, 이상헌, 『경제학의 역사와 사상』3(3), 2002.

「완전고용과 선한 삶」, 박종현, 『경제학의 역사와 사상』, 5(3), 2002.
 

박알림 리뷰어  allimp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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