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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불운이 발견한 텍스트의 잉여후기 임화 비평의 존재론적 선회
이단비 리뷰어 | 승인 2016.09.23 14:13

임화의 비평은 대개 ‘혁명적 낭만주의’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된 바 있다. 이는 그가 좌파 진영의 문학운동을 전개한 KAPF 소속 작가라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발표된 그의 시론과 실제비평은, 단순히 전쟁에서 비롯된 프로문학의 실천적 가능성의 쇠퇴와 같은 외부적 현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평가 자신의 내적인 진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강계숙의 논문 「‘시의 현대성’에 대한 임화의 사유: 후기 평문을 중심으로」(『상허학보』 45집, 2015)는 1930년대 후반 임화의 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추이를 살피며 그가 텍스트 내적 ‘잉여’인 무의식을 독해하는 방식을 통해, 한국문학의 ‘현대성’을 특히 ‘시詩’라는 문학 장르 속에서 징후적으로 발견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신선한 잉여’에서
‘창조적 비평’으로


시의 현대성에 대한 임화의 사유는 그가 작품 내의 ‘신성한 잉여’를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다시 말해 그가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문학을 주장하며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천착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작품 내의 ‘신선한 잉여’, 즉 “의도하지 않았던 여분의 요소”를 탐색하는 일을 비평의 과제로 여기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는 이후 ‘창조적 비평’론으로 이어지고 1930년대 후반 임화의 시 평문들(「시단의 신세대」(1939), 「시단은 이동한다」(1940), 「현대의 서정정신」(1941), 「『백조』의 문학사적 의의」(1942))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된다.


신세대와 시의 현대성
: 오장환의 경우

김복진의 임화 소묘

1930년대 중반 기교주의 논쟁을 비롯해서 ‘시적인 것’에 대한 임화의 입장은 언제나 ‘감정’을 본위로 한 것이었다. 시란 모름지기 ‘진실한 감정’의 표현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비평적 신념은, 그가 “시의 형성과 감정의 내재를 필연적 관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감정’, 즉 낭만적 정신이란 “현실을 개조하는 행위”로서 행위의 근간으로 기능해야 함을 전제한다. 그리하여 그는 주관성-낭만성-서정성-감정-시를 일련의 범주로 엮는 시론을 심도 있게 전개하고 그것을 조선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사회주의 이념과 현실 변혁 움직임이 쇠퇴하면서, 그는 더 이상 ‘낭만성’을 시의 본질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정성·주관적 감정’을 ‘산문-서사성-객관적 현실’과 대비되는 시 장르 일반의 본질로 정리하는데, 저자는 이와 같은 임화의 시 장르에 대한 인식 변화가 1930년대 후반 ‘창조적 비평’론이 ‘시 비평’을 통해 실천되는 근거를 마련한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더 이상 실천적 행위를 사유케 하는 ‘혁명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반성적으로 자각함과 동시에 임화는 신세대의 시에서 ‘현대적 가치’를 내장한 잠재된 감정을 발견하고, 이를 소설이나 희곡과 구별되는 시의 장르적 우위성으로까지 끌고 가기 때문이다.

“소설이 성격과 환경 혹은 작가정신의 전적 균열이라 하여 새 시대와 타협할 수도, 분리할 수도 없어 준순逡巡하는[우물쭈물하는―편집자] 작금간의 사태를 시는 벌써 극한에서 첨예화한 것이다. 이 사실은 소설 상의 새 세대의 초라한 지위를 또한 규정하고 있다.” (「시단의 신세대」(1939), 389쪽

임화가 신세대의 시에서 발견한 감정, 그 현대적 가치란 주지하듯 단순한 주관적 감정으로 환원되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임화는 오장환의 시에서 “쇠퇴하고 몰락하는 ‘황무지’”에서 태어난 존재의 운명이 “현대의 불행과 비애를 예시”하는 방식으로서의 ‘슬픔’을 읽어내고 있다. 오장환으로 대표되는 신세대 시의 현대성은, 이처럼 현실과의 ‘부조화’ 그 자체가 발현되는 지점에서 모종의 ‘부정의식’으로, ‘비애의 감정’으로 피어난 꽃이며 그 자체로 현대시의 운명을 드러내는 시적 모더니티가 되는 것이다.


데카당으로서의 현대시
: 서정주


앞서 언급한 오장환의 경우가, 소위 ‘병든 역사’ 속에서 문명의 붕괴를 직감하는 데서 오는 현실에 대한 부조화와 자기분열의 ‘슬픔’이라면, 임화는 서정주에게서 현대적 ‘산 죽음undead’으로서의 데카당을 발견한다. 이는 오장환의 ‘울음’과 구별되는 것으로 일종의 윤리적 형이상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파괴와 몰락의 현대세계에서 죄지은 자”가 “스스로의 도덕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하는 ‘산 죽음’으로서의 순결한 정신을 서정주의 시가 표방하고 있다고 임화는 보았다. 현대를 살면서 “현대의 타자”로 사는 모순의 반복으로서의 삶, 이것이 바로 서정주 식 실존이며, 페시미즘의 취약성에서 벗어난 현대적 정신으로서의 데카당스인 것이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먼저도 말한 것처럼 어떤 방도를 향해서이고 현대로부터의 도망이 아니고 현대에의 침잠이며 그것과의 타협하지 않는 동서同棲다. 그러므로 현대에밖에 살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현대로부터의 별리다. 이 모순 가운데서 그들은 자기의 생의 지표를 세우는 것이다.”(「현대의 서정정신-서정주 단편」, (294쪽)

현대문명의 파국을 목도하면서 임화는 비평의 역할과 그 존재 이유를 물으며 비평가로서의 자신에게도 한국문학사에도 놀라운 진화를 가져왔다. 저자의 주장처럼 서정주 시에 대한 임화의 비평은 “당대 어떤 이론가도 도달하지 못한 비평적 통찰의 고도高度”를 밝히는 일이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결국 ‘잉여’로서의 감정을 발견하는 임화의 통찰력이 ‘식민지’라는 거대 담론을 벗어나 ‘시의 현대성’을 사유하는 문학사적인 성취로 이어진 것이다. 시대의 불운과 이념의 쇠퇴 속에서 텍스트의 잠재된 ‘잉여’를 치밀하게 독해하는 일, 어쩌면 그러한 시 비평의 작업이야 말로 임화에겐 자기구원의 유일한 과제가 아니었을까.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저변화된 낭만, 전면화된 사실 : 1920년대 후반∼30년대 중반 임화 평론에 나타난 ‘낭만성’ 재검토」, 최은혜, 우리문학회, 우리문학연구 51, 2016.7

「1930年代 後半 林和의 저널리즘論과 批評」, 金眞禧,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어문연구 44(2), 2016.6
 

이단비 리뷰어  ddanddanbi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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